한성백제 이야기

한성백제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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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국과 성장

한성백제BC18 ~ AD475,웅진시대AD475 ~ AD538,사비시대AD538 ~ AD660:기원전 18년->백제 건국,1대 온조왕.기원후 234년->연맹왕국으로 성장,8대 고이왕.기원후 346년->백제 전성기 시작;기원후 371년->고구려 평양성 공격, 고국원왕 살해,13대 근초고왕.기원후 475년:고구려에 의해 한성 함락, 웅진 천도->21대 개로왕.기원후 538년->사비 천도,26대 성왕.기원후 660년:제 31대 의자왕,백제의 멸망.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동명왕의 셋째 아들인 온조가 기원전 18년에 백제를 건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가 주변 소국을 병합하여 연맹왕국으로 성장한 것은 제8대 고이왕(234~286)때부터이다. 고이왕은 낙랑을 공격하고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관직의 등급을 매기고(16관등제) 계급에 따라 옷 색깔을 달리 입게 하였다. 또한 행정기구인 6좌평을 설치하고 법을 정리하는 등 국가 통치조직을 정비하였다.
백제의 전성기는 제13대 근초고왕(346~375)때이다. 한반도 남부의 마한세력을 병합하고 가야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371년에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영역을 지금의 황해도와 전라도까지 포함할 정도로 크게 넓혔다.
4세기 후반부터 100여년간 백제는 고구려와 대립하였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진정책으로 갈등이 한층 격화되었으며, 고구려 장수왕은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그리고 475년 백제의 수도를 공격하여 백제 개로왕(455~475)을 살해하였다. 백제는 수도 한성이 함락되자 급하게 웅진으로 수도를 옮겼다.

주변 나라와의 교류

고구려·신라·가야와의 교류

고구려는 낙랑·대방을 멸망시킨 이후 백제와 본격적으로 대립하였는데, 고구려의 고국원왕 사망과 백제의 한성 함락 등을 거치며 대립이 점차 심해졌다.
신라는 4세기 무렵부터 백제와 본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어 5세기에는 두 나라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368년 근초고왕이 신라에 좋은 말 2필을 보냈으며, 비유왕 때인 433년에는 고구려의 남진에 공동으로 대항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었다. 475년, 고구려가 백제 왕도 한성을 공격했을 때에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도우려 하였다.
가야의 여러 나라는 백제와 동맹관계였다. 백제는 가야 지역을 통해 왜와 안정적으로 교류하고, 가야는 백제의 도움을 받아 중국과 교류하였다. 풍납토성·몽촌토성에서 출토된 가야토기는 이러한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왜와의 교류
왜와의 교류
교역국 교역품
백제→일본(왜) - 외교선물:칠지도, 칠자경, 흰 면포, 바둑판, 오색 채견
- 특산품:서적(천자문, 역서 등), 매(매사냥), 철제품, 금속세공품, 불상, 불사리, 토기
일본(왜)→백제 - 외교선물:야명주(구슬)
- 특산품:구슬, 목재
중국과의 교류
중국과의 교류
교역국 교역품
백제→중국(송) - 외교선물:명광개(금휴개), 과하마
- 특산품:황칠, 인삼, 밤, 긴꼬리닭
중국(송)→백제 -외교선물:무기(요노), 비단, 서적, 비단도포
-특산품:중국 도자기 비단, 차
[중국]허리띠꾸미개-몽촌토성

[중국]허리띠꾸미개-몽촌토성

[중국]양모양청자-원주 법천리 2호 석실

[중국]양모양청자-원주 법천리 2호 석실

출처 : 한성백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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